기본적으로 이야기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가 지루하다면 독자는 책을 덮어버린다.
메인 주제와 메시지 전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단 재미가 있어야
그 다음에 메인 주제가 따라오고 독자에게 메시지 전달이 된다.
그런데 지루한 것도 모자라서 불쾌감을 주고, 내가 열렬히 좋아했던 이야기와
핵심 주제, 캐릭터들을 망치고, 심지어는 그 불쾌함을 강요하며 독자를 조롱하는 이야기라면
독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너무나도 뻔하다.
<테네브리스> 시리즈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주로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 게임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본래 글쓰기에 관심은 조금 있었지만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판타지를 무척 좋아했기에, 나는 2016 - 2017년 경 사이
엘프와 마법, 인간, 흡혈귀 등이 등장하는 만 자짜리의 작은 이야기를 낙서처럼 대충 끄적였다.
이후 몇년간 이 형편없는 이야기를 썼던 경험에 대해 잊고 살다가,
톨킨의 작품들과 위쳐라는 게임을 접하게 되며 그들처럼 감동과 재미, 여운을 주는
좋은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겼다.
그리고 이런 의문 또한 들었다. 왜 한국에는 저런 작품들이 없을까?
한국에도 반지의 제왕, 위쳐와 같은 좋은 작품이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너무나도 부러웠다.
톨킨이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 등을 집필하며 자신의 조국인 영국만의 신화가 없다는 것에
슬퍼했듯이, 나 또한 비슷한 감정이 든 것이었다. 테네브리스를 집필하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면서
조선시대 한복이나 경복궁 같은 한국의 전통적 요소들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위에 언급한 작품들과 의문만이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최근 몇년간 수많은 유명한 영화나 게임, 드라마 제작사에서 원작을 존중하지 않고 제멋대로 바꾸어
내가 열렬히 좋아하던 작품들을 훼손하는 것을 보고선 너무나도 화가 났다.
잔뜩 기대했던 작품들이 실망스러운 퀄리티로 나오고, 원작을 하찮게 보고 무시하는 태도와 더불어
독자와 시청자에게 재미는커녕 불쾌함만 주는데 제작자들은 팬들에게 오히려 그 불쾌함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팬들이 원작은 이렇지 않다고 항의하거나,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
그 원인을 모두 팬들의 탓으로 돌리고 팬들을 못 배운 사람이라고 조롱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계속 이어지자(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나는 2016 - 2017년 경에 썼던 이야기를 꺼내어
대충 다듬어서 프롤로그와 1화 등을 여러 차례 썼다.
하지만 난 전문적으로 문학을 공부한 적도 없는 평범한 사람인 데다가
메인 주제도, 캐릭터도, 세계관도 그 무엇도 없는 상태에서 좋은 글이 나올 리가 없었고,
이를 읽어 본 세계관 공동 창작자 최유진도
형편없는 쓰레기라며 독설을 날렸다(물론 내가 봐도 형편없었기에 상처가 되는 말은 아니었다).
피드백을 받고 난 후 <반지의 제왕>과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재시청하고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를 다시 플레이하며 내 글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야기에 중요한 "메인 주제"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주인공 브루스 웨인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거듭나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다. 나 또한 브루스 웨인처럼 불행한 과거로 인해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기에,
주인공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쓰고자 결정했다.
메인 주제를 결정한 후, 나는 최유진과 이것저것 상의하며 글을 수십, 수백 번씩 고치고
다시 쓰면서 지금의 세계관을 완성했다. 이때가 2020년 경으로, 구상하는 도중 세계관과 플롯,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바뀐 탓에 1권의 프롤로그와 1화만 30번 넘게 다시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의 흐름과 캐릭터들의 성격, 배경 서사, 세계관과 잘 어울리지 않는 요소 등은
과감하게 제거하거나 수정하였다.
나는 <테네브리스> 시리즈를 수년간 공들여 작업하면서, 주인공 유리가 헤쳐나가는 이야기 속에
나와 최유진의 인생관, 생각, 개인적 경험 등을 세계관과 캐릭터에 맞게 각색하여 집어 넣었다.
하지만 그들은 <테네브리스>의 세계관 안에서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이기에
그들만의 개성과 배경 서사를 주고자 하였으며, 이는 작중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취향은 저마다 다르고 재미를 느끼는 부분도 다르다.
하지만, 내가 <테네브리스>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내가 가진 역량 하에서 최대한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나의 모든 노력과 시간, 마음, 정신,
그리고 영혼까지 갈아 넣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테네브리스>를 접하는 모든 독자들이 같은 생각일 수는 없겠지만,
유리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길 바란다.
2024년 가을,
작가 연서진.